일반시민들이 31일 오전 서울 중구 서울광장에 마련된 이태원 사고 사망자 합동분향소에서 조문하고 있다.   / 남기두 기자 
일반시민들이 31일 오전 서울 중구 서울광장에 마련된 이태원 사고 사망자 합동분향소에서 조문하고 있다.   / 남기두 기자 

157명의 소중한 생명을 앗아간 이태원 참사가 발생한 지 2주가 지났다. 하지만 참사 앞에서 대통령을 필두로 한 국정운영 책임자들은 여전히 책임 회피에 급급한 모습이다.

12일 저녁 서울 도심 곳곳에서는 이태원 참사 희생자들을 추모하는 집회가 열렸다. 전국민중행동 등 100여개 시민단체들은 서울 세종대로 일대에서 ‘이태원 참사, 국가 책임이다. 책임자를 처벌하라’는 내용으로 촛불집회를 열었다. 세종대로 왕복 10차선 도로를 가득 메운 집회 참석자들은 국가가 희생자들을 지키지 못했다고 비판했다. 또한, 이태원 참사 전후 부실한 대책을 지적하며 책임자들을 강력히 처벌해달라며 목소리를 높였다.

집회 참석자들은 “참사 발생 직후부터 참사 전후의 부실 대처가 시시각각 드러나면서 이번 참사가 막을 수 있었던 인재, 국가의 부재, 컨트롤타워의 부재로 인한 참사라는 것이 명백해졌다”며 “지금까지 대통령의 공식 사과는 물론, 참사에 책임지려는 공직자는 단 하나도 없고, 현장 경찰과 소방에 책임을 묻는 것으로 참사의 책임을 전가하려는 듯한 모습에 국민들이 분노하고 있다”고 목소리를 높였다.

이정미 정의당 대표는 “윤석열 대통령에게 엄중경고한다. 더 이상 이상민 장관 감싸기로 시간을 보내지 말라. 공식적이고 책임 있는 사과를 하라”면서 “진실 규명과 책임자 처벌이야말로 우리 사회에 똑같은 재난 상황을 막을 수 있는 유일한 길”이라고 비판했다.

10일 오후 정의당이  국회 본청 계단 앞에서 이태원 참사 진상규명·책임자처벌·국정조사를 위한 결의대회를 열었다. / 남기두 기자 
10일 오후 정의당이  국회 본청 계단 앞에서 이태원 참사 진상규명·책임자처벌·국정조사를 위한 결의대회를 열었다. / 남기두 기자 

◇ 기동대, 사고 85분 지나 첫 현장 도착

이태원 참사가 발생한 지난달 29일 밤 9시. 경찰은 접수된 5번째 신고에 가장 긴급한 상황인 ‘코드0(제로)’를 처음으로 부여했지만 당시에도 참사 현장은 여전히 인파가 꽉 들어차 있었다.

서울 시내 집회가 마무리되고 야간 대기 중이던 기동대가 용산경찰서에서 처음 출동 지시를 받은 건 오후 11시17분. 사고 발생 1시간 2분 뒤다.

서울경찰청이 더불어민주당 이태원 참사 대책본부에 제출한 자료에 따르면 사고 발생 이후 경찰 기동대는 모두 5개 부대가 투입됐다.

현장에 처음 도착한 건 11기동대다. 11기동대는 첫 출동 지시를 받고 오후 11시40분 이태원 현장에 도착했다. 출동 지시부터 현장 도착까지 걸린 시간은 23분이다. 참사 발생 전까지 현장 질서 유지를 담당했던 경찰관은 이태원파출소 소속 20여 명이 전부였다.

대통령실 사진 제공
대통령실 사진 제공

이태원 참사 당시 현장 시민의 신고가 사고 발생 한참 전인 오후 6시34분께 처음으로 경찰에 접수된 것으로 드러났지만 4시간 가까이 별다른 조치가 이뤄지지 않은 셈이다.

윤석열 대통령은 지난 7일 ‘국가안전시스템 점검회의’에서 “왜 4시간(첫 112 신고가 들어온 저녁 6시34분부터 참사 발생까지) 동안 물끄러미 쳐다만 보고 있었느냐”며 경찰을 강하게 질책한 바 있다.

◇ 이태원 참사, “국가는 없었다”

지난 8일 열린 국회 예산결산특별위원회에서는 이태원 핼러윈 참사의 책임과 관련한 여야의 질타가 이어졌다.

전혜숙 더불어민주당 의원은 이날 예결위에서 “청년들이 국가는 없었다며 정부 책임 묻기를 시작한다”고 지적했다.

이에 대해 한덕수 국무총리는 “현 시점에서 보면 집회가 일어나는 용산 쪽에 치안을 담당하는 분들이 제대로 대응을 하지 못 했기 때문에 분명히 국가는 없었던 것”이라고 말했다. 이는 정부의 포괄적 책임을 인정한 발언으로 해석된다.

다만 정부 인사들은 “책임자는 사퇴하라”는 야당 요구에는 확연한 온도차를 보였다. 한 총리는 자진하여 사퇴할 생각 없냐는 질의에 “수사를 지켜보고 책임질 일이 있으면 책임지겠다”는 기존 입장을 반복했다.

31일 오전 서울광장 합동분향소에서 이상민 행정안전부 장관이 조문을 마치고 이동하고 있다. / 남기두 기자 
31일 오전 서울광장 합동분향소에서 이상민 행정안전부 장관이 조문을 마치고 이동하고 있다. / 남기두 기자 

이상민 행정안전부 장관은 같은 질문에 “우선 사고 수습에 전념하면서 유족을 위로하고 병상에 계신 분들의 쾌유를 돕는 게 가장 급한 일”이라고 답했다. 책임은 인정하면서도 사퇴하지 않겠다는 의사를 밝힌 것이다.

이 장관은 이태원 참사와 관련해 “특별히 우려할 정도로 많은 인파가 모였던 것은 아니”라며 “경찰이나 소방 인력이 미리 배치함으로써 해결될 수 있었던 문제는 아니었던 것으로 파악한다”고 말해 물의를 빚었다.

행안부는 참사가 난 지 33분 만에야 상황을 파악했고, 이상민 장관은 그로부터 30여분이 더 지난 뒤에 보고를 받아 ‘늑장 대처’ 책임론에 휩싸인 바 있다.

김대기 대통령 비서실장은 이날 국회 운영위원회의 대통령실 국정감사에서 행안부 장관과 경찰청장 문책을 요구하는 야당에 “참사 원인부터 밝혀야 한다”며 “매번 사건이 터질 때마다 장관이나 청장을 바꾸라는 것은 후진적이다”라고 말했다.

◇ 외신들 “이태원 참사는 한국 정부 잘못”

외신들은 이태원 참사 책임은 핼러윈 축제 당일 몰려든 인파 규모를 모니터링하는데 실패한 경찰과 지방자치단체 등 한국 정부에 있다고 꼬집었다.

미국 월스트리트저널(WSJ)은 이번 참사와 관련해 “한국 정부가 많은 사람들을 안전하게 관리할 수 있는 충분한 조치를 취하지 않았다”고 지적했다. 안전 전문가인 폴 워트하이머는 “법 집행기관(경찰)이 클럽 경비원처럼 참사 발생 골목길에 대한 접근을 관리했어야 한다”고 지적했다.

미국 워싱턴포스트(WP)는 “비극이 벌어질 당시를 촬영한 영상은 골목길이 많은 규모의 인파를 감당할 수 없었다는 사실을 보여주지만 관할 구청이 안전 대책으로 내놓은 건 코로나19 예방, 식당 안전 점검, 마약 단속 등 뿐이었다”고 비판했다.

일본 요미우리신문도 “코로나19 거리두기 규제가 완화된 올해 많은 사람들의 핼러윈 축제 참가가 예상됐으나 지자체와 경찰의 준비가 허술해 사고로 이어졌을 가능성이 있다”고 밝혔다.

31일 오후 국과수 및 경찰 관계자 등이 서울 용산구 이태원 압사 사고 현장에서 합동 감식을 벌이고 있다 / 남기두 기자 
31일 오후 국과수 및 경찰 관계자 등이 서울 용산구 이태원 압사 사고 현장에서 합동 감식을 벌이고 있다 / 남기두 기자 

뉴욕타임스(NYT)는 이태원 참사를 두고 “한국에서 발생한 최악의 재난 중 하나”라며 “번성하는 기술 강국, 대중문화 강국인 한국의 이미지를 손상시켰다”고 했다.

이태원 참사로 사망한 호주인 그레이스 래치드(23)와 참사 현장에 함께 있었던 친구 네이선 타베르니티(24)는 틱톡 영상을 통해 “술에 취한 사람들 때문에 발생한 사건이 아니다”며 “폭주는 없었다. 천천히 고통스럽게 일어났다. 사고 예방과 경찰력, 응급서비스가 부족해서 벌어진 일”이라고 지적했다.

백승주 소방방재학 교수는 BBC와 인터뷰에서 “군중 밀집도를 관리하지 않은 것이 (이태원 참사의) 직접적이고 유일한 원인”이라며 “해밀톤 호텔 뒷골에 진출입 통제가 전혀 안됐다. 한계점을 넘어가면 이상 군중의 행동을 나타내게 된다. 1제곱미터당 5명이 초과하면 (당국이) 행사를 취소했어야 한다”고 밝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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