프랑스의 문호 빅톨 위고의 명저 레미제라블은 프랑스 파리에서 일어난 저항운동을 배경으로 대부분의 이야기가 전개되고 있다. 장발장이라는 우리에게 낯익은 주인공이 그를 쫓는 자베르 경감을 피해 고아 소녀 꼬제트를 데리고 파리에서 살게 되고 거기서 성장한 꼬제트가 마리우스라는 청년과 사랑에 빠지게 되는데 마리우스가 저항운동의 핵심 멤버이기에 꼬제트와 장발장은 본의 아니게 시민운동에 휘말리는 운명에 놓이게 된다. 총에 맞아 죽어가던 마리우스를 업고 파리의 지하 하수도를 헤매는 장발장의 모습은 숭고하기 이를 데 없다. 그 덕에 마리우스는 대부분의 동료들이 죽어간 가운데 기적적으로 살아나 꼬제트와 결혼하게 되고 장발장은 두 사람의 행복을 빌며 조용히 죽어가는 것으로 대단원의 막이 내려진다.

1820년대를 배경으로 한 이 소설을 읽으면서 바리케이드를 치고 저항한 시민군의 모습에서 하나의 의문을 느낄 수 있다. 1789년 프랑스 대혁명의 발발로 봉건세력이 타파되었는데 그들은 누구에게 저항하여 싸우는가이다. 프랑스대혁명의 본질을 제대로 이해하지 못한 사람이라면 이런 의문을 갖는 것이 정상일 것이다. 봉건 세력만 타파되면 더 이상 싸울 세력이 없을 것이라는 생각이 상당히 일반화되어 있기 때문이다. 하지만 그것은 끝이 아니라 시작에 불과했다. 프랑스혁명은 그 후 100여 년의 시간을 거쳐 겨우 완수되었던 것이다.

우리의 민주화도 긴 여정을 통해 완성을 향해 나아가고 있다. 우리가 1987년 민주화 운동으로 개헌과 대통령 직선제를 쟁취하자 민주화운동이 사그라들어 기억 속에서 사라져 간 것도 프랑스 대혁명에 대한 오해와 같은 이유 때문이다. 우리는 그들과 달리 1948년 민주주의적 제도를 미국의 도움으로 도입하였지만 그것을 내실화 하기까지 오랜 세월의 투쟁을 필요로 했다. 87년 민주화운동은 제도적 민주주의를 정착시키는 데 성공했지만 그것으로 진정한 민주주의가 완성된 것인지 의문이다. 오늘날에도 여전히 검찰을 비롯한 국가권력이 자신들의 권한을 남용하여 국민의 이익보다 자신들의 이익을 챙기고 있는 점을 생각하면 그것은 엄청난 착각이 아닐 수 없다. 고 노무현 대통령의 비참한 최후가 그것을 증명한다. 국민의 권익을 위해 싸운 노무현은 그렇게 장렬히 죽어갔고 그제야 국민은 자신들이 쟁취한 권리가 아직도 완전한 것과 거리가 먼 것임을 깨닫게 되어 촛불 혁명의 기치를 들게 되었다. 우리는 아마도 프랑스가 겪은 100년 간의 전쟁의 중간과정에 서 있는 것이라고 생각된다.

프랑스 대혁명은 시민이 주축이 되어 일어났지만 그들이 주역이 되지 못한 미완의 혁명이었다. 앙시앙 레즘 즉 봉건 세력에 의해 지배되는 이른바 구체제를 전복하고자 한 것은 시민만이 아니었다. 산업을 기반으로 재물을 축적해 온 부르주아지 계급 역시 같은 소망을 품고 있었다. 돈은 많지만 봉건 계급에게 머리를 숙이고 그들의 지배를 받아야 하는 부르주아지에게 귀족들은 눈에 가시 같은 존재였다. 오페라 하우스에서 자신이 구매한 특등석을 귀족에게 양보해야 했던 그들은 혁명을 꿈꾸게 되지만 하지만 자신들만으로는 혁명이 불가능함을 알았다. 그래서 자신들의 손과 발이 되어 줄 세력을 만들기 위해 그들은 계몽사상을 무기로 일반국민을 선동하여 혁명의 앞 잡이가 되도록 하는 데 성공하였고 바스티유 감옥 습격이라는 날조된 신화를 바탕으로 프랑스 대혁명은 귀족이라는 봉건 세력을 일소하는 데 성공하였다.

그러나 하층민들은 목적을 달성한 부르주아지들에 의해 이른바 ‘팽’ 당하는 신세가 되고 말았다. 자유 평등 우애를 내세운 혁명이념 중 평등은 실종되었고 그들이 내세운 붉은 기는 삼색기에 의해 말살되고 말았다. 삼색기에 붉은 장미를 장식해 주겠다는 부르주아지들의 약속이 허공으로 날아간 것처럼 혁명은 민중이 소외된 채 부르주아지만의 승리로 끝났다.

부르주아지들이 내세운 이념은 다름 아닌 자유주의이다. 그것은 남에게 직접적인 법적인 피해를 주지 않으면 뭐든지 해도 된다는 자유주의는 부르주아지들에게 봉건귀족의 규제를 의식하지 않고 마음껏 그들의 부를 늘릴 수 있는 기회를 주는 사상이다. ‘보이지 않는 손’을 내세운 아담 스미스식의 이른바 ‘자유방임주의’와 ‘야경국가론’은 부르주아지들에겐 자신들이 원하는 유토피아를 건설할 사상적 기반이 되었다. 아담 스미스는 결코 부르주아지들에게 그린 라이트를 쥐어 준 것이 아니지만 그의 사상은 그렇게 부르주아지들에게 이용되었다. 아담 스미스는 ‘국부론’ 이전에 ‘도덕감정론’을 통해 인간의 행위에 대한 절제의 중요성을 강조한 것으로 명성 울 쌓았지만 그런 그의 주장은 큰 영향력을 발휘 하지 못 한 채 ‘보이지 않는 손’에 의한 ‘자유방임’만이 남아 때마침 시작된 산업혁명과 더불어 부르주아지의 힘이 날로 커져가는 상황을 합리화시키는데 이용되었고 그 결과 하층민들의 삶은 더욱 악화되었다.

오늘날까지 이러한 자유주의적 사상은 형태를 바꾸어 여전히 존재한다. 그들에게 시장은 신성불가침 한 존재이며 시장 메커니즘으로 해결되지 않을 경제적인 문제는 없다는 믿음은 굳건하다 아울러 정부의 역할을 국방 외교 치안 등의 최소한의 것으로 축소되어야 한다는 ‘작은 정부’ 론’ 역시 그 뿌리는 같다 할 것이다. 1930년대의 세계 대공황2008년의 미국발 금융위기에 정부 개입을 통한 경제위기 극복이 이루어졌다고 보는 것이 일반적이지만 자유주의자들은 이러한 사실을 절대로 인정하지 않으며 심지어 거시경제학을 무용한 것으로 보는 주장조차 서슴지 않는다. 어떠한 경제위기도 통화량 조절만 하면 모든 것이 해결된다는 그들의 사고방식으로 볼 때 그 모든 정부의 개입은 시장질서를 어지럽혀 위기를 장기화한 매우 해로운 것에 불과한 것이다. 하지만 이런 주장이 얼마나 설득력을 가질 수 있을지 의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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