와다 하루키의 명저 ‘러일전쟁’에는 1884년 당시 청국 주재 러시아 대리공사 베베르의 조선에 대한 인상적인 보고가 실려있다. 베베르는 1884년 7월 19일 조선을 방문해 김옥균과 국교 교섭을 타결하여 양국 간에 국교가 수립되는 성과를 올렸다. 그 후 천진에 복귀하여 조선에 관한 의견서를 외무성에 보내게 되는데 그것은 매우 호의적인 내용이었다. 베베르는 1876년에 대리공사에 취임한 무렵 연해주를 여행하고 이주 조선인들을 “근면한 일꾼, 훌륭한 농부이며 좋은 가정인”이며 현지 적응능력이 매우 뛰어나다고 하는 좋은 평가를 내린 바 있다.

그런 그가 조선을 방문하고 내린 보고서에는 다음과 같은 평가가 실려있었다. “조선은 부유한 나라는 아니다. 그러나 거기에 부유한 사람은 적지만, 중국에서 볼 수 있는 것 같은 그런 빈곤은 없다” 즉 우리가 중국보다 부유한 나라가 아니지만 빈부격차가 상대적으로 작다는 것을 의미한다. 조선은 중국에 비하면 국가권력이 구석구석 미치고 성리학적 이념이 강하게 작동하는 나라이기 때문이 아닐까 싶다. 성리학의 통치이념은 ‘인의정치’이고 ‘위민정신’이라는 점을 감안하면 조선에 빈민이 상대적으로 적었다는 것은 자연스러운 결과이다. 조선의 통치는 중국에 비해 윤리도덕적인 교화에 의한 바가 크다는 것을 의미하는 것이기도 하다.

하지만 이러한 통치가 긍정적인 효과만 가져오는 것은 아니다. 베베르의 보고서에는 이런 내용도 담겨 있다. “현 국왕의 좋은 의도 하에 민간 서비스의 개조 그리고 관리의 침해에서 사유재산 보호로 진척될 수 있다면 현재의 국민성도 바뀔 것이다. 국민은 건전하다” 오늘날에도 문제시되는 관치가 가져오는 부정적인 결과가 묘사되어 있다. 그의 보고에서 국가권력의 비대가 민간의 활력을 약화시키고 사유재산에 대한 침해가 심각하게 이루어지고 있음을 알 수 있다. 하지만 그는 연해주에서도 느낀 것처럼 국민 자체는 건전하기 때문에 제도적 개선만 이루어진다면 현재의 문제-민간의 활력의 약함-가 해결될 것이라는 결론을 내리고 있다. 국가의 지나친 간섭과 사유재산권 침해가 해결되면 충분히 발전할 수 있는 나라라는 것이다.

이 사실을 접한 필자에게 떠오르는 인물이 있었다. 바로 아담 스미스이다. 그가 지은 ‘국부론’에서 제기되는 ‘보이지 않는 손’이 경제를 발전시키기 때문에 국가의 간섭은 최소화되어야 한다는 주장이 베베르의 그것과 일맥상통한다는 느낌이 든다. 아담스미스의 주장은 ‘중상주의’에 의해 국가의 경제에 대한 개입이 일상적으로 이루어지던 시대적 상황에서 그것이 가지는 폐단을 비판한 것이다. 그것은 베베르가 지적한 것처럼 민간의 활력을 위축시키고 사유재산권에 대한 침해를 가져왔기 때문에 아담 스미스는 이를 시정하고자 한 것이다. 18세기 영국이나 19세기 조선은 모두 봉건제 지배의 억압을 받고 있는 점에서 닮았다고 하겠다. (물론 청교도 혁명과 명예혁명을 거친 영국이 훨씬 덜 하였을 것이지만)

18세기에서 19세기로 넘어가면서 유럽은 정치 권력에서 경제 권력으로의 중심이동이 이루어지고 있었다. 노무현 전 대통령이 이를 “권력은 시장으로 넘어갔다”라고 표현한 현상이 우리보다 훨씬 앞 선 시기에 일어나고 있었던 것이다. 필자는 1980년대 후반에 이루어진 민주화가 사실은 바로 이 단계의 변화가 아닌가 싶다. 다르다면 우리는 제도로서의 민주주의가 외부로부터 이식되었기 때문에 유럽이 순차적으로 경험하게 되는 민주주의로의 이행이 이때 함께 진행되고 있었다는 것이다. 노무현 전 대통령의 지적은 시대의 흐름을 제대로 이해한 날카로운 분석에 의한 것이었다. 그의 결론은 경제권력에 대한 국가의 적절한 통제가 필요하다는 것이었다. 아담 스미스의 주장과는 상반된 결론이라 하겠다.

이는 경제 권력이 또 다른 의미에서 억압적인 존재로 등장했음을 의미한다. 억압의 주체가 정치 권력에서 경제 권력으로 바뀌었을 뿐 실질적으로 억압 자체가 바뀌지 않았다는 것이다. 아담 스미스는 ‘국부론’만 저술한 것이 아니라 ‘도덕 감정론’을 통해 욕망에 대한 통제도 주장했음을 알아야 한다. 그런 점에서 경제 권력 나아가 경제적 욕망의 무절제한 충족 역시 통제되어야 한다는 것이라 하겠다. 그런 의미에서 아담 스미스는 노무현의 주장과 완전히 다른 생각의 소유자는 아니었다는 추측을 해 볼 수 있다. 그럼에도 그가 ‘보이지 않는 손’을 주장한 것은 정치 권력의 억압이 심한 시대적 상황 때문이라고 할 수 있다.

베베르와 아담 스미스의 주장은 경제 권력이 우위를 점하게 된 오늘날에는 맞지 않는다. 민간의 활력은 이미 충분히 확보되었는데 새삼 그것을 강조할 필요가 있을까? 사유재산도 마찬가지이다. 도리어 노무현 전 대통령이 말한 거처럼 통제의 대상이 되어야 할 것이다. 어떤 권력도 그것이 비대해지면 폭주하기 마련이기 때문이다. 사유재산의 침해가 빈번히 일어나면 경제발전을 기대하기 어렵다. 누가 그런 상황에서 경제활동을 제대로 할 수 있겠는가? 하지만 사유재산권이라는 것도 하나의 권리이니 적절한 통제가 필요하다. 인간의 권리는 사회의 안녕과 질서 그리고 공익을 무시하면서까지 보장되어서는 안 되기 때문이다.

그런데도 여전히 정치권력이 우위에 있던 시대의 주장을 되풀이하는 것은 시대착오이다. 사유재산권의 보호가 그런 시대의 주장이라면 이제는 새로운 시대에 맞는 주장이 펼쳐져야 하지 않겠는가? 부동산 정책에 있어서도 새로운 시대적 환경에 맞는 이념이 기초 되어야 한다. 봉건권력이 사유재산을 침탈하던 시대가 아니라 민중의 정부가 민중의 삶을 위해 봉사해야 하는 시대에 지나친 사유재산권에 대한 규제는 당연한 것이다. 그런데도 사유재산권의 절대성에 기초하여 부동산 정책을 수립한다면 시대착오가 아니고 무엇이란 말인가?

“새 포도주는 새 부대”에 넣으라고 했다. 철 지난 이론은 과감히 정리할 필요가 있다. 사유재산의 절대성은 봉건적 억압에 대한 반발이지 절대적 진리는 될 수 없다. 부동산에 대한 권리나 이익도 그런 점에서 마찬가지이다. 따라서 부동산 정책은 새로운 시대적 요구에 따라 결정되어야 할 것이다. 바로 경제 권력으로부터 민중의 삶을 지킨다는 민주주의의 기본적 이념이 전제되어야 할 시대적 요구이다. 그것이 바로 인류의 진보를 완성하는 길이다. 억압과 착취에서 벗어나 모두가 인간다운 삶을 살 수 있는 세상을 위하여 우리가 해야 할 일인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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