토마 피케티의 ‘21세기 자본’은 생각처럼 어려운 책은 아니다. 주석까지 800쪽 본문만 700쪽의 방대한 분량의 학술서이긴 하지만 숫자나 수식 등을 최소화하였고 표현도 가능한한 쉽게 하였기 때문이다. 또한 경제학서적이지만 결코 그 내용이 경제학적인 것에 한정되지 않다. 제인 오스틴의 ‘오만과 편견’, 발자크의 ‘고리오 영감’ 등의 문학작품을 통해 자신의 주장을 뒷받침하게 하기도 한다. 저자는 또한 역사나 정치 등과 경제학의 협력을 강조하고 실천하려고 애쓴 흔적이 역력하다. 그가 미국에서 돌아온 이유를 미국 경제학이 경제학에만 머물러 있기 때문이라고 한 것은 종합적 학문으로서의 경제학을 지향하였기 때문이다.

이 책의 키워드는 불평등, 경제사, 세습자본주의, 글로벌 자본세와 누진적 소득세라고 생각된다. 불평등은 본서의 가장 중요한 모티브이다. 모두에서는 피케티는 “사회적 차별은 오직 공익에 바탕을 둘 때만 가능하다”라는 프랑스혁명의 제1조 선언을 인용한 것도 불평등에 대한 그의 관심이 얼마나 큰 지를 말해준다. 하지만 그가 불평등에 관심 때문에 본서를 좌파적인 서적으로 생각한 우파의 비판은 오해이다. 피케티는 좌파와 달리 불평등을 없애야 하거나 불평등 자체를 악으로 보고 있지는 않다. 불평등에 대한 철학조차 명확하지 않아 좌파들의 공격의 빌미가 되고 있는데 좌우 양 진영에서 비판을 받고 있는 것은 그의 입장에서는 억울할 것이다. 우파의 공격은 근거가 없고 좌파의 공격은 번짓수가 틀린 것이라 하겠다.

이 책은 훌륭한 경제사 서적이기도 하다. 모든 학문은 그 학문에 관련된 역사를 제대로 연구해야 한다는 생각한다. 역사는 자연과학처럼 거듭된 실험에 의해 진리를 탐구하고 확인할 기회가 없는 학문들에게 불완전하기는 하지만 법칙이나 이론을 증명해 줄 좋은 자료가 될 수 있다. 방대한 통계를 오랫동안 발굴 조사하여 분석한 것만으로도 본서는 대단히 훌륭한 학문적 업적이다. 본서에 반대하는 우파의 학자들도 그 점만은 높이 평가하고 있음을 생각하면 더욱 그렇다. 피케티 스스로도 ‘21세기 자본’을 경제사적 업적이라고 인정하고 있다.

경제사는 그동안 주로 좌파의 영역이었으나 우파인 피케티가 뛰어 들음으로써 보다 활발한 연구가 기대되게 된다. 그의 주장처럼 비현실적인 이론만으로는 진실에 접근할 수 없다. 책상 위에서의 이론이 아니라 실제 역사를 통해 탐구한다면 보다 확실한 결과를 얻을 수 있을 것이기 때문이다. 한동안 경제학의 변방에 머물던 경제사의 화려한 부활이 기대된다.

세습자본주의는 그가 내세운 핵심적 주장이다. α=rβ, β=s/g r>g 이 세 수식은 모두 세습자본주의를 설명하기 위해 쓰여진 공식이다. 이 수식을 통해 얻은 결론은 성장률이 낮을 경우(아울러 인구변화도 작다면)자본소득이 커지고 그 자본소득이 세습되면 불평등이 더욱 확대되어 세습에 의해 신분이 결정되는 봉건사회적인 불평등구조가 재현될 것이라는 것이다.

글로벌 자본세와 누진적 소득세는 세습자본주의의 출현을 막을 피케티의 대안이다. 피케티는 불평등을 없애는 것이 아니라 세습자본주의로 인해 성장이 멈춰서 자본주의사회가 유지 될 수 없음을 걱정하고 있다. 그가 장기간에 걸쳐 통계를 조사하고 분석한 결론은 세습자본주의 시대와 저성장률이 일치한다는 것이다. 성장율을 끌어 올리고자 한다면 세습자본주의의 출현을 막아야 하고 그러기 위한 최선의 대안으로 세금을 통한 방법을 제시하고 있다.

그가 이렇게 생각하게 된 배경은 그의 연구결과가 그러한 대안을 제시하고 있다고 여기기 때문이다. 불평등이 전체적으로 크게 완화된 1910년대부터 1970년대까지 성장률은 인류역사상 가장 높은 3.5%를 기록하였다. 반면 19세기에 이른바 ‘벨에포크’(좋은 시대라는 뜻)시대에는 성장률은 1인당 성장률은 1% 이하로 매우 낮았고 그 이전에는 더욱 낮았다. 이 때의 불평등은 오늘날보다 훨씬 심하였고 특히 자본의 불평등은 엄청나서 상위 10%가 90%의 자본을 독점할 정도였다. 생각해 보면 봉건사회란 거의 재산이 없는 농노와 엄청난 재산을 가진 귀족이 함께 한 사회니 당연하다 하겠다. 본서의 소설에서 귀족의 소득수준은 평균 소득의 수십 배라고 하였는데 이 차이는 결국 자본의 차이에서 비롯된 것이었다고 한다.

결국 1980년대 이후의 현대사회와 1910년 이전의 사회는 저성장과 엄청난 불평등이라는 점에서 공통점을 갖는다. 불평등과 저성장이 깊은 관계가 있다는 것인데 이는 불평등으로 인한 세습자본주의가 저성장을 낳는 것이라 하겠다. 노력이나 능력이 아닌 자본의 불평등으로 인해 소득이 결정되는 세습자본주의에서 성장은 정체된다고 할 수 있다.

물론 1980년대 이후의 불평등은 19세기의 그것보다 덜 심각하고 또 그 내용도 다르다. 10%가 90%의 자본을 소유할 정도는 아니고 따라서 소득격차도 덜하다. 게다가 오늘날의 소득격차의 주원인은 자본소득이 아니라 노동소득에 의한 것이라는 점이 결정적으로 다르다. 세습재산이 아닌 능력이나 노력에 의해 성공하느냐가 수입의 격차를 가져온다고 하겠다.

다만 피케티가 걱정하는 것은 소득이 자본으로 변하며 계속 커져가는 점이다. ‘세습중산층’이라는 과거에 없던 계층이 자본을 세습하는 현상이 나타나는 것도 이러한 우려를 더 강하게 만든다. 이른바 20대 80의 사회가 출현하고 있음을 의미한다. 과거처럼 1%대99%의 구조보다 훨씬 그 해결이 어려울 수 밖에 없다. 그것은 세습계층이 사회에 골고루 분포되어 있기 때문에 이를 개선하려는 시도에 대한 광범위한 저항이 예상되기 때문이다.

우리는 봉건사회처럼 정체된 사회를 원하지 않는다. 피케티의 연구는 자본 격차와 저성장이 그런 사회를 가져온다는 결론을 끌어냈다. 무엇이 먼저인지는 장담하기 어렵지만 해법은 나온 셈이다. 저성장을 고성장으로 만드는 것은 어렵지만 자본 격차를 시정하는 것은 가능하다. 1910년대에서 1970년대는 자본에 대한 중세를 부과한 것이 자본 격차를 줄여 역사상 가장 높은 성장률을 기록한 역사의 교훈을 살리면 되는 것이 피케티가 주는 교훈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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