5년간의 임기를 마친 문재인 대통령이 9일 오후 청와대를 퇴근하며 분수광장에서 시민들과 인사를 하고 있다. / 남기두 기자 
5년간의 임기를 마친 문재인 대통령이 9일 오후 청와대를 퇴근하며 분수광장에서 시민들과 인사를 하고 있다. / 남기두 기자 

전‧현직 대통령 사저 앞 시위가 끊이지 않자 갖가지 집회 규제를 강화하는 내용의 집회 및 시위에 관한 법률(이하 집시법) 개정안이 잇달아 발의됐다.

앞서 보수단체들이 경남 양산시 평산마을 문재인 전 대통령 사저 앞에서 시위를 전개하면서 주민들이 욕설과 고성, 확성기 소음으로 고통을 호소했다. 이에 맞서 진보단체들이 서울 서초구 윤석열 대통령 사저 앞에서 맞불집회를 여는 등 갈등이 악화하고 있다.

집회로 인해 시민들이 소음 고통을 호소하면서 집시법을 개정해야 한다는 의견과 헌법상 기본권인 ‘표현의 자유’를 제한해서는 안 된다는 주장이 팽팽하게 맞서고 있다.

◇ 욕설‧고성 집회 처벌 안 받는 이유는…애매한 법 기준

문재인 전 대통령 부부는 지난달 사저 앞에서 집회‧시위를 이어가던 3개 보수단체 회원들을 고소했다. 욕설 및 허위사실을 반복적으로 유포함으로써 모욕 및 허위사실 적시에 의한 명예훼손, 살인 및 방화 협박, 집단적인 협박 등으로 공공의 안녕에 위협을 끼칠 것이 명백한 집회를 개최했으니 집시법 위반 혐의로 이들을 처벌해달라는 것이다.

확성기와 스피커를 사용한 집회로 인해 전‧현직 대통령 사저 인근 주민들의 피해가 발생하면서 집시법을 개정해 집회에서 발생하는 소음을 강력하게 규제해야 한다는 목소리가 나온다.

현행법에는 집회나 시위가 열리는 장소에 따라 평균 소음 상한이 정해져 있고, 순간 최고 소음 한도도 명시돼 있다.

10분간 소음을 측정하고 평균 수치에 따라 제재를 가하는 등가소음도 방식을 사용하던 경찰은 지난 2020년 12월부터는 매 측정 시 발생한 소음도 중 가장 높은 소음도를 측정하는 최고소음도와 등가소음도를 병행하는 방식으로 변경했다.

전‧현직 대통령 사저는 주거지역으로 분류돼 낮에는 10분 동안 65데시벨(dB), 밤에는 60dB을 넘기면 안 된다. 이 기준을 위반하면 6개월 이하의 징역 또는 50만원 이하의 벌금, 구류 등에 처할 수 있다.

문제는 시위를 하는 단체들이 집시법의 허점을 이용하고 있다는 점이다. 동일한 집회‧시위에서 측정된 최고소음도가 1시간 내에 3회 이상 기준을 초과해야 경찰이 단속을 하지만 1시간 동안 2번 최고소음치를 넘어가는 식으로 꼼수를 쓰고 있는 것이다. 이 경우 경고만 받고 시위를 지속할 수 있다.

또한, 1인 시위는 집시법의 적용을 받지 않아 소음 규제 대상이 되지 않는다. 1인 시위도 소란을 피우면 처벌할 수 있으나 범칙금 처분에 그쳐 제재가 가볍다는 지적이 나온다.

이번 양산 사저 시위의 경우 욕설 등 모욕적 표현이 특히 문제가 됐다.

집시법 시행령 제4조 제2항은 사람에게 모욕을 줄 수 있는 구호‧낙서 및 유인물 배포를 금지하고 ‘사생활의 평온을 뚜렷하게 해칠 우려가 있는 경우’ 시위 중단 등 규제가 가능하다. 하지만 어느 정도가 모욕인지 기준이 애매하고 경찰의 자의적 해석 우려 때문에 실제로 거의 적용되지 않고 있다.

◇ ‘집시법 개정안’이 과연 해답일까?

8일 오후 기본소득당 용혜인 국회의원은 국회 소통관에서 화물연대 파업에 대해 발언하고 있다. / 남기두 기자 
8일 오후 기본소득당 용혜인 국회의원은 국회 소통관에서 화물연대 파업에 대해 발언하고 있다. / 남기두 기자 

더불어민주당 의원들은 문재인 전 대통령 집 앞에서 열리는 시위를 막고자 집회 규제를 강화하는 내용의 법안을 발의했다.

올해 발의된 집시법 개정안을 살펴보면 정청래 더불어민주당 의원은 전직 대통령 사저 앞을 시위 금지 장소에 포함하는 안을 대표 발의했다.

윤영찬 의원은 상업적 목적만으로 집회‧시위를 하고 이를 중계방송해 후원금을 모금하는 행위를 금지하는 내용의 법 개정안을, 박광온 의원은 주거지역 등에서 소음‧진동‧모욕 행위로 사생활 평온을 해칠 우려가 있는 경우 집회를 금지하는 내용의 안을, 한병도 의원은 개인 또는 특정 집단을 대상으로 한 명예훼손‧모욕‧반복된 악의적 표현을 규제 대상으로 삼는 내용의 안을 각각 발의했다.

발의된 법안들의 내용을 들여다보면 소음 규제를 강화하는 것이 아닌 욕설‧혐오표현(hate speech)‧증오발언과 같은 내용 규제에 초점이 맞춰져 있다. 명확한 기준을 만들어 제한하자는 취지다.

하지만 이 법안을 놓고 헌법상 집회와 결사, 표현의 자유를 침해할 수 있다는 우려의 목소리가 나온다.

민주사회를 위한 변호사모임 공익인권변론센터는 논평을 내고 금지 장소로 ‘전직 대통령 사저’를 추가하는 것에 대해 “자유로운 장소‧시간‧방법‧목적을 스스로 결정할 집회의 자유를 침해할 우려가 있다”고 비판했다.

이어 센터는 “혐오표현과 규제 대상 표현을 정의하는데 사회적 소수자 차별과 권력관계라는 맥락을 고려하지 않고 있다”면서 “오히려 권력자 혹은 위정자를 향한 시민들의 정당한 비판과 의견 개진을 ‘혐오표현’이라는 명목으로 규제하거나 위축시킬 위험이 있다”고 지적했다.

관련 학계와 전문가들은 1인 시위 규제에 대해서 1인 시위는 민주주의 발전의 하나의 상징이며 개인의 억울함을 호소할 마지막 수단임에도 이것을 규제 대상으로 삼는 것은 바람직하지 않다고 비판했다.

한편, 집시법 제11조를 폐지하는 내용의 법안이 발의되기도 했다. 용혜인 기본소득당 의원은 이같은 내용의 집시법 개정안을 대표 발의해 권력자 비판을 원천 봉쇄하는 집시법 제11조가 이미 헌법재판소에서 헌법불합치 결정을 받았기 때문에 해당 조항을 폐지해야 한다고 주장했다.

집시법 제11조는 국회의사당, 법원‧헌재, 대통령 관저, 국회의장‧대법원장‧헌법재판소장‧국무총리 공관 등의 100m 이내에서 집회와 시위를 금지하도록 규정하고 있다.

용혜인 의원은 최근 발의된 집시법 개정안에 대해 “모든 시민의 기본권이 아니라 정권이나 특정인 보호를 우선하는 문제적 입법”이라며 “한국만큼 광범위하게 집회금지구역을 정하고 세세하게 규제하는 나라는 찾기 어렵다”고 비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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